망각이론
망각이론이란
일상적인 생활에서 기억을 못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입니다. 1885년에 에빙하우스는 정보가 망각되는 비율을 추정하기 위해, 20분에서 21일까지의 간격을 두고 무의미 철자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테스트하여 그래프로 나타냈는데, 이것이 바로 망각곡선(forgetting curve)입니다. 망각곡선은 입력정보의 기억상실 비율이 처음에 가장 급격하게 떨어지다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적게 떨어지는 일관된 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억테스트를 통하여 처음 1시간내에 상당히 급격한 정보손실을 경험하고,9시간 내에 항목들의 60%를 망각하고, 그 이후에는 망각률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망각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지금까지 망각에 관한 이론들이 몇 가지 정도 제안되었습니다.

1) 흔적쇠퇴이론
가장 오래된 망각이론이 바로 흔적쇠퇴이론(trace decay theory)인데, 이것은 심도처리이론에 입각한 망각이론입니다. 심도처리이론에 의하면, 기억이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의 세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기보다는 정보가 다양한 수준에서 분석되고 이후 재구성되는 능동적인 과정으로 봅니다. 그리고 눈길을 걸어 다니면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 자극정보가 처리되는 수준에 따라 다양한 기억흔적(memory trace)을 남긴다고 가정합니다.(Lockart & Craik, 1990). 또한 망각은 사람들이 경험과 학습을 통하여 머릿속에 남겨 놓은 기억흔적이 시간경과에 따라 점차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억의 사라짐과 상응하는 쇠퇴에 대한 생리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기억흔적이 있다면 기억의 사라짐과 함께 생리적인 변화가 있어야 함에도 그것을 확인 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간만이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롭게 학습된 무의미 철자에 대한 기억은 시간경과에 따라서 사라지지만, 고등학교에서 학습했던 외국어는 몇 년 동안 유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2) 간섭이론
1924년 존 젠킨스(John Jenkins)와 칼 달렌바흐(Karl Dallenbach)는 무의미철자로 기억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어느 날 학습과 테스트 사이에 피험자들이 수면을 취하고서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처럼 간섭이론(interference theory)은 망각을 어떤 특정한 학습경험이 다른 학습경험을 간섭함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학습의 변화에 따라서 기억하게 되는 내용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데, 이것이 바로 간섭입니다.
망각의 원인이 되는 간섭은 정보의 유사성이 높을수록 많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크게 역행간섭과 순행간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역행간섭(retroactive interference)은 새로운 학습내용이 이미 학습된 정보에 대한 회상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양한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들을 테스트하기 전에 유사한 사진들에 노출시키면 그들은 이미 보았던 그림들을 재인하는 정도가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Chandler, 1991). 반면에, 순행간섭(proactive interference)은 그 반대 현상으로 이전 학습내용이 새로운 학습내용을 회상하는 개인의 능력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간섭 때문에 망각이 일어난다면, 간섭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기억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자기 바로 전에 공부를 하거나 시험을 치르기 바로 전에 모든 자료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또한 간섭은 유사성이 높을수록 강해질 수 있으므로, 전혀 이질적인 것은 전후에 학습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기 전후에 통계학과 생물학을 공부하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3) 인출실패이론
망각이 일어나는 원인은 장기기억 속에 저장된 정보를 인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억의 성공여부는 인출단서와 접근 가능성(accessibility)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회상과 재인에 의한 기억 차이와 설단현상으로 설명 할 수 있습니다. 회상과 재인은 둘 다 사람들이 정보를 인출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명시적 기억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재인을 더 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 후에 졸업앨범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서 이름을 회상하라고 한 경우에는 60&만이 정확하게 기억을 하였지만, 이름이 맞는가를 재인하라고 한 경우 90%가 정확하게 기억을 하였다 합니다. 이런 경향성은 고등학교 평점에 대한 기억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Bahrick, Hall, & Berger, 1996). 일반적으로, 기억량은 재인-보조회상-비보조회상의 순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처럼 재인이 회상보다 더 용이하다는 것은 망각이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머릿속에서 다시 꺼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즉 인출에 실패해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점을 지지해 주는 결과인 것입니다.
1966년 로저 브라운(Roger Brown)과 데이빗 맥닐(David McNeil)을 설단형상에 대한 실험을 실시하였습니다. 설단현상(tip-of-the tongue phenomenon)은 생각날 듯해서 혀끝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생각나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들은 피험자들에게 이상한 단어 대한 정의를 보여 주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 내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목소리가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말하기 기술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정답은 “복화술(ventriloquy)"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것에 대하여 확실하게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마치 막 재채기를 할 것 같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상태처럼, 분명히 알고는 있는데 그것을 회상해 낼 수는 없었습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은 유사한 발음이나 의미를 말할 수 있었고, 거의 첫 철자와 마지막 철자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억 속에 있는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튀어나올 수 있도록 ‘힌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Brown, 1991a). 70~80대의 노인들은 젊은 성인들보다 설단현상을 더 많이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정확한 기억을 불러일으킬 때 마음속에 너무도 많은 단어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Heine, Ober, & Shenaut, 1999). 이처럼 설단형상도 망각의 원인이 인출실패, 즉 접근가능성의 문제로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인 것입니다.